천상과 지상의 일치, “성인들의 통공 (Communion of Saints)”
2002년 저희 할아버지께서 하느님 품에 안기셨습니다. 저희 가족은 모두 할아버지의 임종을 지켰고, 많은 신자분들의 조문과 기도 속에서 장례를 모두 잘 마칠 수가 있었습니다. 평생을 함께 살아 오신 할머니께서는 “나이들면 다 죽는거지 뭐.” 라고 하시며 무덤덤 하게 할아버지의 죽음을 받아 들이시며, 지내 오시다가 하루는 이런 이야기를 하셨습니다. “그 양반 자던 곳만 보면 꼭 거기 드러누어 있는 것 같어서 무서워서 못 자것더라” 저도 할아버지가 계시던 방 옆을 지나가다보면 꼭 할아버지께서 앉아 있으실 것 같은 느낌인데 할머니는 항상 같은 방, 같은 이불을 쓰셨으니 오죽 하실까 하는 생각이 들었습니다. 그리고는 할머니는 말씀을 이으셨습니다. “그런디… 그래도 어떡한댜… 그래도 자리를 비워 놓을 수 없어서 거기 누어서 잤더니… 왜 마음이 편해진댜? 마음이 놓이구.” 할머니의 이 말씀을 듣다보니 할아버지께서 할머니를 지금도 하늘에서 지켜주고 계신다는 생각이 들었습니다.
위령성월에 세상을 떠난 영혼을 위해 기도합니다. 이 전통은 바로 “성인들의 통공(Communion of Saints)”이라는 교리가 뒷받침 해줍니다. “성인들의 통공” 교리는 이승과 저승이 끊어진 것이 아닌 하느님의 시간 안에 연결되고 통하고 있다는 교리입니다. 꼭 성인들만과만 통한다는 이야기가 아닙니다. 영원하신 하느님 안에서 세상에 숨쉬고 살아가는 사람도, 세상을 떠나 하느님 품에 안긴 영혼도 모두 하느님 나라의 동일한 구성원 입니다. 지상의 교회와 천상의 교회가 하느님 안에서 하나의 교회로 친교를 이루고 있다는 가르침 입니다. 그렇기 때문에 세상에 살아 있으면서, 죽은 영혼들을 위해 기도해주는 위령성월의 우리들의 모습은 “성인들의 통공”이 우리 삶 가까이에서 이루어 지고 있는 것입니다.
여기에는 하느님 안에서의 영원한 삶이 지금 우리의 현재에서부터 이미 시작되었다는 믿음도 함께 담겨 있는 것이기도 하죠. 이러한 위령성월의 신앙과 교회 전통의 모습과 관련하여, 죽은 이들을 위한 기도를 이어나가는 것과 동시에, 지난주에 언급했던 “전대사”도 역시 중요한 요소입니다. 전대사는 고해성사를 통해서 죄를 용서 받아도 남는 잠벌(暫罰)을 모두 없애주는 은총입니다.
우리 신앙인은 죽음이 삶의 끝이 아니라 영원한 생명으로 나아가는 길이라고 믿습니다. 부활에 대한 믿음이 있기 때문입니다. 우리의 사랑하는 가족과 조상들도 역시 여전히 우리를 위하여 기도하고 계십니다. 이러한 천상과 지상의 일치를 통해 우리가 함께 나누었던 사랑은 죽음으로써 끝나는 것이 아닌 더욱 짙어지고 깊어집니다. 위령성월을 통해 하느님 품에 안기신 그리고 연옥에 계신 많은 영혼들을 위해 기도하고 더욱 깊이 사랑을 전할 수 있는 삶이 되기를 기도 드립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