신앙 속에 성장한 나의 청소년기 – 김광태 루카
나의 청소년기는 다양한 활동으로 꾸며진 시간들 이었다. 어느 날 네잎 크로바 농촌 봉사 활동을 알게 되어 그 안에 소속되어 활동을 하게 되었고 나의 인생관도 바뀌게 되었다. 나는 이웃 친구들과 함께 아침 일찍 일어나 주 2회 온 동네 길거리를 쓸었다. 또 틈틈이 농촌 진흥원에 찾아가 새로운 농법과 야채를 기르는 것을 배웠다. 저녁에는 사랑방에 모여 어른 들께 배운 것을 가르쳐 드렸고, 농사가 더 잘 되도록 힘을 썼다. 그때 내 나이는 16세였다.
세월이 흘러, 천주교를 알게 되었고, 그 안에는 가톨릭 노동 청년회인 JOC에 들어가게 되었다. 이 단체는 노동자들을 경영자들의 횡포와 갑질로부터 보호하자는 취지의 모임 이었다. 또 동시에 노동자들에 대한 교육을 통해 올바른 노동관을 가질 수 있도록 했다. 나는 JOC 활동을 통해 노동자들의 조합을 지원하고 교육과 연구를 통해 건전한 노조 양성에 힘을 썼다. 그때 배우고 느낀 노동의 중요함과 또 건전한 노조의 모습은 지금도 여전히 내 안에서 좋은 영향을 주고 있다.
JOC 활동을 하던 중 대전시 선화교 밑에 모여 사는 집 없이 사시는 분들을 만나게 되었다. 그곳에는 15살 부터 60세까지 다양한 연령 때가 30명 정도 모여 살고 있었다. 그들과 관계를 맺어 나가다가 그곳의 대장을 만나 안으로 들어가게 되었다. 사람들의 눈초리가 따갑게 느껴졌다. 경찰이 아닌 일반인이 그곳에 방문하는 것은 처음이라면서 그제서야 한바탕 웃으며 가까워 지게 되었다.
그 후에 그분들과 거리감 없이 지내게 되었고 시간을 내서 가끔 찾아가 놀아도 주고 심지어 그분들이 하는 일과 (넝마 줍기) 까지 함께 다니며 했다. 저녁시간이 되면 그분들이 얻어오는 밥을 한번에 끓여 나누어 먹기도 하고 가끔 소주도 한잔씩 나누며 즐겁게 지내기도 했다. 그분들에게 필요한것이 무엇일까 생각을 하다가, 수집한 폐지들을 더 좋은 가격에 팔 수 있도록 해드려야 겠다는 생각이 들었고 그렇게 길을 열어들이기도 했다. 하지만 그렇게 넝마줍기로는 삶이 조금도 나아지지 않았다. 그때 참으로 다행으로 대전 경찰서 보안과를 찾아 그분들의 어려운 사정을 이야기 했고 경찰서를 통해 도움을 받을 수 있었다. 어떤 농부가 이분들의 어려운 사정을 알고 논을 희사해 준 것이다. 조금씩 어려운 삶을 살고 있던 선화교 밑 사람들에게 희망을 비추는 것 같았다. 그 논이 있는 곳(홍두동)에 벽돌로 화장실이 딸린 건물을 만들고, 물도 잘 나오도록 해주었다. 나는 그 때부터 JOC 멤버들과 함께 그분들을 돌보고 같이 운동과 학업도 병행했다.
이후 나는 군에 입대를 하게 되면서 그분들을 돕는 일을 그만 두어야 했다. 그 어려운 시기를 떠올려 보면, 서로 나누는 정과 사랑이 더욱 큰 빛을 내는 시간들이 아니었나 하는 생각을 해본다. 우연히 알게되어 활동하게 된 가톨릭 노동 청년회 (JOC)와 또 우연히 알게된 선화교 밑 사람들이 그런 정과 사랑을 실천하는데 나에게는 소중한 사람들이었고 순간들 이었다. 10대의 어린 시절에 하느님께서 나에게 좋은 것을 주시려고, 이끌어 오셨구나! 하는 마음에 큰 감사를 드린다. 또 부르시는 곳에서 하느님의 사랑을 실천하는데 열심히 몸과 마음으로 응답하며 살아가겠다는 다짐도 하게 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