첫 임신, 그리고 12주만의 유산 – 고성희 아니시아
가슴이 벅찰 기쁨에 이어 느닷없이 들이 닥친 불행은 ‘내 삶은 내 노력만 있으면 뭐든 가능해’하는 밑도 끝도 없는 자만으로 살아왔던 제게 도저히 일어날 수도, 받아들일 수 없는 일이었습니다. 뭐든 가능하다 생각 했던, 그 잘났다 생각했던 가당치도 않은 내 노력으로는 어찌 해 볼 도리가 없었으니까요.
‘기도 따위를 하느니 차라리 그 시간에 토익 점수를 일점이라도 더 올리겠다.’하는 생각이 훨씬 더 세상을 제대로 사는거라고 믿었던 저는 그 아픔으로 인해 뼈저리게 깨달아야했던 것이 있었습니다. 내 삶은 결코 내 뜻 대로, 내 의지대로만 돌아가는게 아니란걸 말입니다.
이제와 생각해 보니, 그 아픔을 주신것 역시도 아버지의 뜻이었나봅니다. 저는 그제서야 비로소 이미 떠나보낸 아기를 위해 제가 할 수 있는게 오직 기도밖에 없다는사실을 알게 됐으니까요. 그 때까지 저는 부처님이든 알라신이든 어떤 누구에게든 기도 한번 제대로 해본 적이 없었습니다. 하지만 그렇게 하느님의 존재 마저도 부정했던 제가 병원에서 나와, 제대로 걷기 조차도 힘든 몸을 이끌고 곧바로 간 곳은 다름아닌 집 앞 성당이었습니다. 아기를 제발 하늘나라로 가게 해 달라고, 아기는 아무 잘못도 없으니 제발 천사들과 함께 하늘 나라에서 놀 수 있게 해 달라고 한참을 울먹이며 하느님께 기도하고 또 기도했습니다. 그렇게 아기를 아버지께 맡기고 용서를 빌었습니다. 그리고 그 날부터 천주교 신자가 되었습니다.
내 삶에 아픔을 주시는 것도, 또 그 아픔을 이겨내는 힘을 주시는 것도 아버지의 뜻이란 사실을 저는 결국 아버지가 주신 그 아픔을 통해서 받아들일 수 있었습니다. 요즘도 가끔은 그 날 생각이 납니다. 그리고 그 날부터 한치의 흔들림도 없이 믿고 있는 사실이 한가지 있습니다. 모자라디 모자란 엄마의 마음 깊은 곳에 하느님에 대한 믿음과 사랑을 심어 주고 떠난 그 아기는 오늘도 하늘나라에서 신나게 천사들과 놀고 있을거란 사실 말입니다.
– 고성희 (아니시아)