프란치스코 교황님의 “참행복”에 대한 세번째 가르침
프란치스코 교황님의 “참행복”에 대한 세번째 가르침 – “행복하여라, 온유한 사람들”
사랑하는 형제자매 여러분, 안녕하세요!
오늘은 ‘참행복’ 가운데 세 번째 행복 선언에 대해 살펴 보겠습니다. “행복하여라, 온유한 사람들! 그들은 땅을 차지할 것이다.”(마태 5,5) 여기서 사용한 “온유(mite)”라는 단어는 글자 그대로 ‘달콤한, 온화한, 친절한, 폭력이 없음’을 의미합니다. 온유는 다툼의 순간에 나타나며, 적대적인 상황에 어떻게 반응하는가를 통해서 볼 수 있습니다. 우리는 공격을 받거나 기분 상하게 하거나 해코지 당할 때와 같은 “압력을 받을 때” 어떻게 반응합니까? 바오로 사도는 서간에서 “그리스도의 온유와 관용”(2코린 10,1)을 권고합니다. 그리고 베드로 사도는 수난 중의 예수님의 태도를 떠올립니다. 예수님은 응답하지 않으시고, 위협하지 않으시고, “의롭게 심판하시는 분께 당신 자신을 맡기셨습니다.”(1베드 2,23) 예수님의 온유는 그분의 수난을 통해 확실하게 볼 수 있습니다.
성경 안에서 “온유”라는 단어는 또한 땅을 소유하지 않은 사람을 가리킵니다. 그래서 우리는 세 번째 행복 선언에서 온유한 사람들이 “땅을 차지 할 것이다”고 말하는 것에 충격을 받습니다. 실제로 이 세 번째 행복 선언은 시편 37장을 인용하는데, 사실, 땅의 소유는 전형적으로 다툼이나 분쟁의 영역에 속합니다. 땅을 차지하기 위해, 특정 지역의 패권을 차지하기 위해, 서로 싸웁니다. 전쟁을 통해 땅을 정복합니다. 그러나 예수님은 “온유한 사람들은 땅을 정복할 것”이라고 말씀하지 않으시고 “차지할 것이다.”라고 말씀하십니다. 성경에서 “ 차지하다(재산을 상속받다)”라는 말은 훨씬 큰 의미를 가지고 있습니다. 하느님의 백성은 바로 약속의 땅인 이스라엘 땅을 “차지하는 자(상속자)”라고 불립니다. 그 땅은 하느님 백성을 위한 약속이자 선물이며, 단순한 영토보다 더 큰 어떤 표징입니다. 곧 하늘인 “ 땅”입니다. 우리가 향하고 있는 새 하늘과 새 땅입니다.(이사 65,17; 66,22; 2베드 3,13; 묵시 21,1 참조) 그러므로 온유한 사람은 가장 숭고한 땅을 “차지하는(상속받는)” 사람입니다. 그 사람은 문제점을 피하기 위해 임시변통의 교훈을 찾는 겁쟁이가 아니며, “약한” 사람도 아닙니다. 온유한 사람은 타협하는 사람이 아니라, 다른 쪽 땅을 잘 지키는 것을 배운 그리스도의 제자입니다. 그는 자비와 형제애와 신뢰와 희망을 지키면서, 자신의 평화를 지키고, 하느님과의 관계를 지키고, 하느님의 선물을 지키는 사람입니다.
여기서 분노의 죄에 대해 언급하지 않을 수 없습니다. 화를 내지 않는 사람이 있습니까? ‘우리는 분노 때문에 얼마난 많은 것들을 파괴했습니까? 얼마나 많은 것을 잃었습니까?’ 분노의 순간에 통제력을 상실하고, 정말로 중요한 것을 보지 못하고, 때로는 아무런 해결책 없이 형제와의 관계를 망칠 수 있습니다. 분노 때문에 많은 형제들이 더 이상 대화하지 않고, 멀어집니다. 온유함은 그와 반대 입니다. 온유함은 모여들게 하지만, 분노는 흩어버립니다. 온유함은 마음을 사로잡을 수 있고, 우정을 구해낼 수 있으며, 다른 많은 것도 할 수 있습니다. 왜냐하면 사람들이 화를 내겠지만, 온유함을 통해 진정하고, 다시 생각하고, 원래의 발걸음으로 되돌아 올 수 있기 때문입니다. 이렇게 온유함으로 많은 것을 새롭게 할 수 있습니다. 온유함으로 차지해야하는 “땅”은 마태오 복음이 말하는 것처럼 형제의 구원입니다. 타인의 마음보다 더 아름다운 땅은 없습니다. 형제와 함께 찾은 평화보다 더 아름다운 땅을 얻을 수 없습니다. 바로 그것이 온유함으로 차지해야 할 땅입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