프란치스코 교황님의 “참행복”에 대한 네번째 가르침
프란치스코 교황님의 “참행복”에 대한 네번째 가르침 – “행복하여라, 의로움에 주리고 목마른 사람들!”
사랑하는 형제자매 여러분, 안녕하세요!
오늘은 주님께서 “참행복”에 대해 가르치시면서 우리에게 주신 행복의 빛나는 길을 계속 묵상합시다. 네 번째 “참행복”에 대한 내용입니다. “행복하여라, 의로움에 주리고 목마른 사람들! 그들은 흡족해질 것이다.”(마태 5,6) 이제 우리는 굶주림과 목마름에 관련된 또 다른 유형의 약함에 대해 살펴 봅시다. 배고픔과 목마름은 인간의 기본적인 욕구이며, 생존과 관련이 있습니다. 이는 일반적인 욕구의 문제가 아니라, 영양분과 같이 나날의 삶에 필요한 것입니다. 의로움에 주리고 목마르다는 것은 복수를 원하는 사람들에 대한 이야기가 아닙니다. 우리는 세 번째 “참행복”인 온유함에 대해 말했습니다. 확실히 불의는 인류를 해칩니다. 인간 사회는 평등, 진실 및 사회적 정의가 시급하게 필요합니다. 세상의 모든 사람들이 겪은 악은 하느님의 마음에 다다른다는 것을 기억합시다. 그 어떤 아버지가 자녀들의 고통을 아파하지 않겠습니까?
성경은 가난하고 억압받는 이들의 고통을 말하고 있습니다. 탈출기에서 (3,7-10 참조) 이스라엘 백성들의 억압의 고통에서 나오는 부르짖음을 들으신 하느님께서는 당신 백성을 해방시키기 위해 내려오셨습니다. 그러나 주님께서 우리에게 말씀하시는 의로움에 주리고 목마르다는 것은 모든 사람이 생각하는 인간적 의로움보다 훨씬 더 심오한 것입니다. “산상설교”의 내용을 보면, 예수님께서는 인간의 권리나 개인의 완전성보다 더 큰 의로움에 대해 가르치시면서 “너희의 의로움이 율법 학자들과 바리사이들의 의로움을 능가하지 않으면, 결코 하늘 나라에 들어가지 못할 것이다”(마태 5,20)라고 하십니다. 이것이 바로 하느님에게서 오는 의로움입니다.(1코린 1,30 참조) 성경에서 우리는 육체적 갈증보다 우리 존재의 근원에 자리하고 있는 욕구입니다. 시편 63,2 에서는 “하느님, 당신은 저의 하느님, 저는 새벽부터 당신을 찾습니다. 제 영혼이 당신을 목 말라합니다. 물기 없이 마르고 메마른 땅에서 이 몸이 당신을 애타게 그립니다.”라고 합니다. 아우구스티노 성인은 이렇게 이야기 하십니다. “님 위해 우리를 내시었기 님 안에 쉬기까지는 우리 마음이 찹찹하지 않삽나이다.”(성 아우구스티누스, <고백록>) 우리 안에는 내적인 갈증, 내적인 굶주림, 내적인 불안이 있습니다. 모든 이의 마음 안에, 심지어 가장 탁락하고 선에서 멀어진 마음일지라도, 빛을 향한 갈망이 숨어 있습니다. 언제나 진리와 선에 대한 목마름이 우리 안에 있습니다. 이 목마름을 불러 일으키는 분은 성령이십니다.
이런 이유로 교회는 성령으로 충만하여 모든 사람에게 하느님의 말씀을 선포하도록 파견됐습니다. 왜냐하면 예수님의 복음은 사람들이 깨닫지 못할지라도 꼭 필요한 것이자 인류의 마음에 줄 수 있는 가장 큰 의로움이기 때문입니다. “성령의 은총은 우리에게 하느님의 의로움을 준다. 성령께서는 신앙과 세례를 통하여 우리를 그리스도의 수난과 부활에 결합시키심으로써, 우리를 그분의 생명에 참여하게 하신다.(<가톨릭교회 교리서>, 2017항)
예수님께서는 이 세 번째 행복(‘의로움에 주리고 목마름’) 안에 우리를 실망시키지 않는 목마름이 있다고 말씀하십니다. 목마름이 있다면 그 목마름은 채워질 것이고, 항상 잘 마무리될 것이라고 말씀하십니다. 왜냐하면, 그것은 하느님의 마음에, 사랑이신 성령에 해당하기 때문입니다. 그리고 성령께서 우리 마음 안에 뿌리신 씨앗에 해당하기 때문입니다. 주님께서 이 의로움에 대한 목마름을 주시길 바랍니다. 의로움을 찾고, 하느님을 뵙고, 이웃에게 선을 실천하는 열망을 주시길 바랍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