묵주기도와 교회
초대교회부터 수도자가 150개 시편기도를 꾸러미로 바치듯 신자들도 간단한 기도를 반복해서 소리내어 바치는 염송기도가 발전했다. 초기엔 주로 주기도문을 정해진 숫자만큼 끈으로 작은 돌을 묶어 만든 꾸러미로 바치곤 했는데 12세기에 들어오며 아베 마리아, 성모송도 이렇게 꾸러미로 바치게 되었다.
격변기였던 중세 중기, 혼란과 위기 속에 교회쇄신 움직임도 컸던 시기에 전지전능하신 하느님, 심판자이신 하느님으로부터 사랑으로 인간이 되어 오신 하느님의 사랑으로 관심이 커지면서 어머니와 같은 온화하고 따스한 하느님 사랑을 향하는 마음도 커졌다. 그래서 개혁수도회인 시토회에서도 창설자부터 어머니 마리아의 신앙을 기리는 흐름이 커졌고 이후 설립된 프란치스코회, 도미니코회와 같은 탁발 수도회는 일반 신자들도 신앙을 확고하게 가질 수 있도록 신앙의 대중화에 노력했다. 그런 흐름 안에서 어머니 마리아의 시각으로 그리스도를 바라보는 성모송을 꾸러미로 바치는 묵주기도가 확장 전파되었다. 교황 비오 5세가 1571년 터키 함대에 대항해서 싸운 레판토 해전에서 성모님의 도움으로 기대하지 않았던 승리를 거둔 것을 기념하여 성모님의 축제로 도입하였다.
비오 5세는 전투가 있기 이전에 이미, 인간적 시각에선 돌이킬 수 없는 이슬람 전투세력의 침입을 막기 위해 그리스도인들이 성모님께 전구할 것을 주창했었다. 1573년에 이미 이 기념일을 로사리오 축일이라 바꾸어 불렀는데, 1913년부터 10월 7 일에 경축하였다.
이렇게 10월 로사리오 성월은 특별한 방식으로 교회와 세계의 위기들에 신뢰를 가득 담아 깊은 믿음으로 묵주기도를 드리자는 교회의 요청이다. 교황 레오 13 세는 ‘로사리오 회칙’을 선포하여 특별한 방식으로 이 기도를 장려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