프란치스코 성하의 제60차 성소주일 담화
프란치스코 교황 성하의
제60차 성소 주일 담화
(2023년 4월 30일)
은총이며 사명인 성소
사랑하는 형제자매 여러분,
사랑하는 젊은이 여러분,
오늘 우리는 60번째 성소 주일을 기념하고 있습니다. 성소 주일은 제2차 바티칸 공의회가 진행되던 1964년에 성 바오로 6세 교황에 의하여 제정되었습니다. 하느님 섭리인 이 계획은 하느님 백성 구성원들이 개인으로서 그리고 공동체로서, 오늘날 세상의 고통과 희망, 도전과 성과 가운데에서도 우리에게 저마다 주님께서 맡기신 부르심과 사명에 응답하도록 돕고자 합니다.
올해 저는 여러분이 성찰하고 기도할 때에 “은총이며 사명인 성소”라는 주제를 길잡이로 삼기를 요청합니다. 이 주일은 주님의 부르심이 은총이고 온전한 선물이며, 이와 동시에 다른 이들에게 복음을 전해 주려는 약속이라는 사실을 경이롭게 되새기는 귀중한 기회입니다. 우리는 증언하는 신앙으로, 곧 성사와 교회의 친교에서 체험되듯이 은총의 삶과 세상에서의 우리 사도직을 긴밀히 이어주는 신앙으로 부름받았습니다. 그리스도인들은 성령에 이끌려 실존적 변두리와 인간의 극적 사건들에 응답하도록 도전받고 사명이 하느님의 일이라고 더없이 인식합니다. 사명은 우리가 홀로 수행하는 일이 아니라 언제나 교회의 친교 안에서, 우리 형제자매들과 함께, 교회 목자들의 인도 아래 수행하는 일입니다. 이것은 언제나 하느님의 꿈이었기 때문입니다. 하느님께서는 우리가 사랑의 친교 안에서 당신과 함께 살아갈 것을 꿈꾸어 오셨습니다.
“세상 창조 이전에 …… 선택하시어”
바오로 사도는 우리 앞에 놀라운 지평을 열어 줍니다. 하느님 아버지께서는 그리스도 안에서 “세상 창조 이전에 …… 우리를 선택하시어, 우리가 당신 앞에서 거룩하고 흠 없는 사람이 되게 해 주셨습니다. 사랑으로 예수 그리스도를 통하여 우리를 당신의 자녀로 삼으시기로 미리 정하셨습니다. 이는 하느님의 그 좋으신 뜻에 따라 이루어진 것입니다”(에페 1,4-5). 이 말씀은 우리가 가장 충만한 때의 삶을 엿보게 해줍니다. 하느님께서는 우리를 당신의 모습으로 당신과 비슷하게 ‘품으시고’ 우리가 당신의 자녀가 되기를 바라셨습니다. 우리는 사랑으로 사랑을 위하여 사랑과 함께 창조되었고, 우리는 사랑 때문에 빚어졌습니다.
우리 삶의 과정에서 이 부르심은 우리 존재의 근간과 우리 행복 비결의 하나로서 늘 새로운 방식으로 성령의 활동을 통하여 우리에게 옵니다. 이는 우리 정신을 일깨우고 우리 의지를 굳건하게 하며 우리를 놀라움에 휩싸이게 하고 우리 마음을 타오르게 합니다. 때로 성령께서는 전혀 예상하지 못한 방식으로 우리에게 오십니다. 저에게도 그러셨는데, 1953년 9월 21일, 학교 연례 행사에 가던 저는 성당에 들러 고해성사를 드리도록 이끌렸습니다. 그날이 제 인생을 바꾸었고 지금까지 지속되는 흔적을 남겼습니다. 자기 자신을 선물로 내어 주게 하는 하느님의 부르심은 점진적으로 드러나는 경향이 있습니다. 가난한 상황을 접할 때에, 기도드리는 순간들에서, 우리가 복음의 명백한 증언을 보거나 우리 정신을 열어 주는 무엇인가를 읽을 때에, 우리가 하느님 말씀을 듣고 그것이 하느님께서 우리에게 직접 하시는 말씀이라고 느낄 때에, 가까운 형제자매가 나누어주는 조언들에서, 질병과 슬픔을 겪는 순간들에서 ……. 하느님께서는 우리를 부르시는 모든 방식에서 당신의 무한한 창조성을 드러내십니다.
주님의 주도권과 자애로운 그분의 선물은 우리 편에서의 응답을 요청합니다. 성소는 “하느님의 선택과 인간 자유 사이의 상호 작용”1)이고, 하느님과 인간 마음 사이의 역동적이고 흥미로운 관계입니다. 성소의 선물은, 우리 존재라는 토양에서 싹을 틔우고 우리 마음을 하느님과 다른 이들에게 열어 주어 우리가 우리 자신이 찾은 보물을 그들과 나눌 수 있도록 하는 하느님의 씨앗과 같습니다. 이것이 우리가 성소라고 부르는 것의 기본 골조입니다. 하느님께서 사랑으로 우리를 부르시고 우리는 감사하며 그분께 사랑으로 응답을 드리는 것입니다. 우리는 한 분이신 아버지의 사랑받는 자녀라는 사실을 깨닫고 서로를 형제자매로 알아보게 됩니다. 아기 예수의 데레사 성녀는 마지막으로 이것을 명백하게 ‘알아보았을’ 때에 이렇게 부르짖었습니다. “마침내 저는 저의 소명을 찾았습니다. 저의 소명은 사랑입니다. 진실로, 저는 교회에서 제자리를 찾아냈습니다. 저의 어머니이신 교회의 심장 안에서 저는 사랑이 될 것입니다.” 2)
“저는 이 땅에서 하나의 사명입니다”
하느님의 부르심은 “파견”을 내포한다고 우리는 말했습니다. 사명이 없는 성소는 없습니다. 우리가 발견한 새로운 생명을 다른 이들에게 전하지 않는다면 행복과 충만한 자기실현이 있을 수 없습니다. 사랑으로의 하느님 부르심은 우리를 침묵할 수 없도록 하는 체험입니다. 바오로 성인은 이렇게 말합니다. “내가 복음을 선포하지 않는다면 나는 참으로 불행할 것입니다”(1코린 9,16). 그리고 요한의 첫째 서간은 이러한 말씀으로 시작합니다. ‘우리가 듣고 눈으로 보고 살펴보고 손으로 만져 본 것, 곧 사람이 되신 말씀을 우리의 기쁨이 충만해지도록 여러분에게도 선포합니다’(1요한 1-4 참조).
5년 전, 저는 교황 권고 「기뻐하고 즐거워하여라」(Gaudete et Exsultate)에서 세례 받은 모든 이에게 이렇게 말했습니다. “여러분도 자신의 온 생애를 하나의 사명으로 여길 필요가 있습니다”(23항). 그렇습니다. 이는 우리 모두 저마다 다음과 같이 말할 수 있기 때문입니다. “저는 이 땅에서 하나의 사명입니다. 이것이 바로 제가 여기 이 세상에 있는 이유입니다”(「복음의 기쁨」, 273항).
그리스도인으로서 우리의 공동 사명은 우리가 어디에 있든 우리의 행동과 말을 통하여 예수님과 교회인 그분의 공동체 구성원들과 함께 있다는 체험을 기쁘게 증언하는 것입니다. 이 사명은 자비의 물질적 영적 활동 안에서, 쓰고 버리는 문화와 무관심의 문화와는 반대로 친밀함, 연민, 자애를 반영하는 친절하고 반기는 삶의 방식으로 표현됩니다. 착한 사마리아인과 같은 이웃이 됨으로써, 우리는 그리스도인 성소의 핵심을 이해하게 됩니다(루카 10,25-37 참조). 그 핵심은 섬김을 받으러 오신 것이 아니라 섬기러 오신 예수 그리스도를 본받는 것입니다(마르 10,45 참조).
이러한 선교 활동은 단순히 우리의 능력과 의도, 계획에서, 또는 우리의 순수한 의지력이나 덕을 실천하려는 노력에서 생겨나지 않습니다. 오히려 예수님과 동행하는 깊은 체험의 결과입니다. 그래야만 우리는 사람이시며 생명이신 그분을 증언할 수 있고, 이로써 ‘사도’가 될 수 있습니다. 그래야만 우리가 우리 자신을 “빛을 비추고, 복을 빌어 주고, 활기를 불어넣고, 일으켜 세우고, 치유하고, 해방시키는 이 사명으로 날인된 이들, 심지어 낙인찍힌 이들로”(「복음의 기쁨」, 273항) 여길 수 있습니다.
이 체험에 관한 복음의 표상은 바로 엠마오로 가는 두 제자의 이야기입니다. 부활하신 예수님과의 만남 이후 그들은 서로 말하였습니다. “길에서 우리에게 말씀하실 때나 성경을 풀이해 주실 때 속에서 우리 마음이 타오르지 않았던가!”(루카 24,32). 두 제자에게서 우리는 “타오르는 마음, 움직이는 두 발”3)을 지닌다는 의미가 무엇인지 볼 수 있습니다. 이는 ‘마리아는 길을 떠나 서둘러 갔다’(루카 1,39 참조)라는 주제와 함께 제가 기쁘게 기다리고 있는 리스본에서 열리는 이번 세계 청년 대회를 향한 저의 간절한 희망이기도 합니다. 모든 이가 마음이 타올라 길을 떠나 서둘러 가라는 부름을 받았다고 느끼기를 빕니다.
함께 부름받아 모였습니다
마르코 복음사가는 예수님께서 열두 제자들을 저마다 이름으로 당신께 부르셨던 때를 설명합니다. 예수님께서는 그들을 세우시어, 당신과 함께 지내게 하셨고 복음을 선포하고 병자들을 고쳐 주며 마귀를 쫓아내도록 파견하셨습니다(마르 3,13-15 참조). 주님께서는 당신의 새로운 공동체의 초석을 이렇게 놓으셨습니다. 열두 제자는 출신 사회 계층과 직업이 각기 달랐고, 그 누구도 영향력 있는 인물이 아니었습니다. 예수님께서 둘씩 파견하신 다른 제자 일흔두 명을 부르셨던 것처럼, 복음은 또 다른 부르심들에 대해서도 이야기합니다(루카 10,1 참조).
교회는 에클레시아(ἐκκλησία)입니다. 이는 그리스말로, 하느님 나라가 가까이 오도록 서로 사랑을 나누고(요한 13,34;15,12 참조) 다른 모든 이에게 그 사랑을 전하려 헌신하는 예수 그리스도의 선교하는 제자 공동체를 이루도록 부름받아 모인 이들의 집회를 뜻합니다.
교회 안에서 우리는 모두 다양한 성소와 은사와 직분을 따르는 종입니다. 사랑 안에서 자신을 내어 주라는 우리의 공통된 부르심은, 가정을 작은 가정 교회로 가꾸고 사회의 여러 분야를 쇄신하고자 복음의 누룩으로 활동하는 데에 헌신하는 남녀 평신도의 삶에서 전개되고 그 구체적인 모습을 찾습니다. 또한 하느님 나라의 예언적 표징으로서 형제자매들을 위하여 온전히 하느님께 봉헌된 남녀 축성생활자의 증언에서, 그리고 설교와 기도와 거룩한 하느님 백성의 친교 증진에 봉사하도록 자리한 성품 교역자인 부제, 신부, 주교를 통하여 전개되고 그 구체적인 모습을 찾습니다. 교회 안의 그 어떤 개별적인 성소도 다른 모든 이와 이루는 관계 안에서만 그 참다운 본성과 풍요로움이 충만히 드러납니다. 이러한 의미에서 교회는 일치하지만 구별되는 그 모든 성소가 이루는 성소의 ‘교향악’이며, 하느님 나라의 새 생명이 온 세상에 퍼져 나가도록 화합을 이루며 ‘밖으로 나가는’ 데에 함께하는 것입니다.
은총이자 사명: 선물이자 임무
사랑하는 형제자매 여러분, 성소는 선물이자 임무, 새 생명과 참된 기쁨의 원천입니다. 이번 성소 주일을 위한 기도와 활동의 계획들이 우리의 가정, 본당 공동체, 축성생활 공동체, 교회 단체와 운동 안에서 성소에 대한 인식을 증진하기를 바랍니다. 부활하신 주님의 성령께서는 우리에게서 무관심을 몰아내고 연민과 공감의 선물을 베풀어 주십니다. 그리하여 우리가 사랑이신 하느님(1요한 4,16 참조)의 자녀로 날마다 거듭나 살아가게 해 주시며, 우리 또한 그 사랑을 다른 이들에게 전하게 해 주십니다. 사랑의 자리가 넓혀지도록4) 어디에서든지, 특히 배척과 착취, 가난과 죽음이 도사린 자리에 생명을 가져다주어, 이 세상 안에 하느님의 다스리심이 더욱더 충만해지기를 빕니다.
성 바오로 6세 교황께서 1964년 4월 11일에 제1차 성소 주일을 위하여 마련하신 기도가 우리의 여정에 함께하기를 바랍니다.
“영혼들의 거룩한 목자이신 예수님,
사도들을 부르시어 그들을 사람 낚는 어부로 만드셨으니,
젊은이들 가운데 신실하고 너그러운 영혼들을 끊임없이 주님께 이끄시어
주님의 제자요 봉사자로 만들어 주소서.
그 젊은이들이 모든 이의 구원이라는 주님의 목마름에 동참케 하소서. ……
온 세상의 지평을 그들 앞에 열어 주소서. ……
그들이 주님의 부르심에 응답하여, 여기 이 땅에서 주님의 사명을 이어가고
주님의 신비체인 교회를 이루며
‘세상의 소금’과 ‘세상의 빛’(마태 5,13-14)이 되게 하소서.”
동정 마리아님께서 여러분을 굽어보시고 지켜 주시기를 빕니다.
여러분에게 교황 강복을 보냅니다.
로마 성 요한 라테라노 대성전에서
2023년 4월 30일
부활 제4주일
프란치스코